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계기용 변성기 이야기: Accuracy와 Burden의 실체
도입: 거대한 에너지를 안전한 숫자로 바꾸는 통역사
변전소 설계를 처음 배우는 후배들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질문이 있습니다.
"선배님, 보호 계전기는 어디서 전류와 전압 정보를 받아오는 건가요?"
당연한 질문입니다. 변전소 주회로에는 수천 암페어(A)의 전류와 수만 볼트(V)의 전압이 흐릅니다. 보호 계전기나 디지털 미터기는 고작 5A, 110V 수준만 견딜 수 있는 섬세한 전자 장비입니다. 주회로를 직접 계전기에 연결하면 즉시 폭발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계기용 변성기(Instrument Transformer)**입니다.
💡 핵심 비유: 변전소의 주회로는 사람이 직접 들을 수 없는 초음파입니다. 계기용 변성기는 이 초음파를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음파로 변환해주는 변환기입니다. 크기는 작아지지만, 원래 신호의 특성은 정확히 유지됩니다. 이것이 CT와 VT의 본질입니다.
오늘은 CT, VT, CVT가 각각 무엇인지, 그리고 사양서에서 가장 많이 헷갈리는 **Accuracy(오차 계급)**와 **Burden(부담)**이 실제로 무슨 의미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왜 계기용 변성기가 필요한가?
변전소 설계의 출발점은 이 질문입니다.
"보호 계전기가 주회로의 전류와 전압을 어떻게 아는가?"
주회로를 직접 건드릴 수 없으니, 주회로의 거대한 값을 안전한 수준으로 줄여서 전달해주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계기용 변성기입니다.
💡 우리 몸의 감각 신경과 같습니다. 뇌(보호 계전기)는 손(주회로)을 직접 만지지 않습니다. 대신 감각 신경(계기용 변성기)이 손끝의 정보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여 뇌로 전달합니다. 계기용 변성기가 없다면 보호 계전기는 말 그대로 장님이 됩니다.
계기용 변성기는 크게 두 종류입니다.
- CT(Current Transformer, 계기용 변류기): 대전류 → 소전류로 변환
- VT/PT(Voltage Transformer / Potential Transformer, 계기용 변압기): 고전압 → 저전압으로 변환


2. CT: 전류를 안전한 크기로 줄이는 장치
역할과 원리
CT는 주회로에 흐르는 수천 암페어의 대전류를 보호 계전기가 처리할 수 있는 1A 또는 5A로 줄여서 전달합니다.
변류비(Transformation Ratio)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예시: CT 변류비 2000/5A
주회로(1차)에 2,000A가 흐를 때 CT 2차측 출력 = 5A 변류비 = 2,000 / 5 = 400
계전기는 5A를 읽고 400을 곱하여 실제 전류 2,000A를 계산합니다.
💡 쉬운 비유: 수도관에서 흐르는 대량의 물을 직접 측정하기 어려우니, 작은 분기관을 만들어 흐르는 물의 양을 측정하고 나서 비율을 곱하는 것과 같습니다.
CT 용도별 종류
CT는 목적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뉩니다.
| 구분 | 계측용 (Metering) | 보호용 (Protection) |
| 목적 | 정상 운전 중 전력량 측정 | 사고 시 대전류 정확히 전달 |
| 핵심 요구 | 높은 정밀도 | 포화 없이 대전류 전달 |
| Accuracy 등급 | 0.2, 0.5, 1.0 | 5P, 10P |
| 특징 | 사고 시 포화되어 계전기 보호 | 사고 시에도 선형 유지 필수 |
3. VT/PT: 전압을 안전한 크기로 줄이는 장치
역할과 원리
VT(또는 PT)는 수만 볼트의 고전압을 보호 계전기가 처리할 수 있는 110V 또는 115V로 줄여서 전달합니다.
일반 변압기와 원리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일반 변압기보다 훨씬 높은 정밀도가 요구됩니다. 전력량 계산이나 보호 계전기 동작에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예시: VT 변압비 154,000 / 110V
주회로(1차)에 154,000V(154kV)가 인가될 때 VT 2차측 출력 = 110V 변압비 = 154,000 / 110 = 1,400
4. CVT: 초고압에서 경제적으로 전압을 측정하는 장치
왜 초고압에서는 PT 대신 CVT를 쓰는가?
145kV 이상 초고압 계통에서는 일반 VT(PT)를 사용하기가 경제적으로 불리합니다. 이유는 절연 비용에 있습니다.
일반 VT는 1차 권선 전체가 계통 전압을 직접 받습니다. 345kV 계통이라면 345kV 절연을 권선 전체에 적용해야 합니다. 절연 설계 비용이 전압의 제곱에 비례하여 급증하기 때문에, 초고압으로 갈수록 VT 제작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CVT(Capacitive Voltage Transformer)는 이 문제를 영리하게 해결합니다.
CVT의 작동 원리: 2단계 전압 강하
1단계: 커패시터(콘덴서) 분압
직렬로 연결된 커패시터들이 전압을 나눕니다. 345kV → 커패시터 분압 → 수 kV 수준으로 1차 강하
2단계: 소형 전자형 변압기(EMU)로 최종 강하
수 kV → 소형 변압기 → 110V 출력
💡 쉬운 비유: 100층 건물에서 사람을 1층으로 내려보낼 때, 엘리베이터 하나로 100층을 내려오는 것보다, 중간에 환승 로비(커패시터 분압단)를 두고 두 번에 나눠 내려오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CVT가 바로 이 환승 전략을 사용합니다.
경제성 비교
| 항목 | 일반 VT (PT) | CVT |
| 절연 방식 | 전 구간 직접 절연 | 커패시터 분압 후 절연 |
| 145kV 이상 적용 | 비용 급증 | 경제적 |
| 345kV 이상 적용 | 사실상 비현실적 | 표준 |
| 부가 기능 | 전압 측정만 | PLC(전력선 통신) 연계 가능 |
| 주요 적용처 | 66kV 이하 | 145kV 이상 초고압 |
초고압 계통에서 CVT가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은 단순히 관행이 아닙니다. 절연 비용의 경제성과 PLC(Power Line Carrier) 통신 기능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기술적 우위가 있습니다.
5. 사양서의 핵심 용어 ①: Accuracy(오차 계급)
사양서를 처음 보는 후배들이 가장 먼저 막히는 것이 Accuracy 등급 표기입니다.
Accuracy는 "이 변성기가 얼마나 정확하게 통역하는가"를 나타냅니다.
💡 정밀 저울 비유: 계측용 CT는 100g짜리 물건을 100.2g으로 재는 정밀 저울입니다. 아주 작은 오차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전력량 측정 오차는 곧 전기 요금 오차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보호용 CT는 튼튼한 저울입니다. 평상시 정밀도보다, 100kg짜리 물건이 올라와도 부서지지 않고 값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측용 CT Accuracy 등급
| 등급 | 허용 오차 | 적용처 |
| 0.1 | ±0.1% | 정밀 전력량계 (과금용) |
| 0.2 | ±0.2% | 일반 전력량계 |
| 0.5 | ±0.5% | 산업용 계측기 |
| 1.0 | ±1.0% | 일반 미터기 |
보호용 CT Accuracy 등급
보호용 CT의 등급 표기는 조금 다릅니다. 5P20처럼 표기됩니다.
5P20 읽는 법:
5 = 허용 오차 5% 이내 P = Protection(보호용) 20 = 정격 전류의 20배까지 이 오차 범위를 보장
즉 5P20 CT는 정격 전류의 20배(사고 전류 수준)까지 오차 5% 이내로 전달한다는 의미입니다. 사고가 발생해 전류가 20배로 치솟아도 포화 없이 정확히 전달해야 보호 계전기가 올바르게 동작합니다.
| 등급 | 허용 오차 | 과전류 배수 | 의미 |
| 5P10 | ±5% | 10배 | 정격의 10배까지 보장 |
| 5P20 | ±5% | 20배 | 정격의 20배까지 보장 |
| 10P10 | ±10% | 10배 | 정밀도 낮고 경제적 |
VT/CVT의 Accuracy 등급
| 등급 | 허용 오차 | 적용처 |
| 0.1 | ±0.1% | 정밀 전력량 계측 |
| 0.2 | ±0.2% | 일반 전력량 계측 |
| 0.5 | ±0.5% | 산업용 계측 |
| 3P | ±3% | 보호 계전기용 |
| 6P | ±6% | 보호 계전기용 (경제적) |
6. 사양서의 핵심 용어 ②: Burden(부담)
후배들이 Accuracy보다 더 어려워하는 개념이 바로 Burden입니다.
Burden은 CT나 VT의 2차측에 연결된 모든 장치들이 소비하는 임피던스(부하)의 합입니다. 단위는 VA입니다.
💡 짐차의 무게 제한 비유: CT를 짐차라고 생각하세요. 이 짐차는 최대 10VA까지 짐을 실을 수 있습니다. 2차측에 연결된 보호 계전기, 미터기, 케이블의 저항이 모두 짐이 됩니다. 짐이 10VA를 넘으면 짐차가 비틀거리며 정확한 값을 전달하지 못합니다.
Burden이 발생하는 요소들
CT 2차측에는 다음과 같은 부하들이 연결됩니다.
| 부하 요소 | Burden 발생 원인 |
| 보호 계전기 | 내부 임피던스 |
| 디지털 미터기 | 내부 임피던스 |
| 전력량계 | 내부 임피던스 |
| 연결 케이블 | 케이블 저항 (길이에 비례) |
케이블이 Burden에 미치는 영향
케이블이 Burden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큽니다. 케이블이 길어질수록 저항이 커지고 Burden이 증가합니다.
[케이블 Burden 계산]
Burden(VA) = I(A)² × R(Ω)
R = 2 × 케이블 길이(m) × 저항(Ω/m) (왕복이므로 × 2)
예시: CT 2차 전류 5A, 케이블 50m, 단면적 4mm²(저항 약 0.0046 Ω/m)
R = 2 × 50m × 0.0046 = 0.46Ω Burden = 5² × 0.46 = 11.5VA
이 경우 케이블만으로도 11.5VA의 Burden이 발생합니다. CT 정격 Burden이 10VA라면 케이블만으로 이미 초과된 것입니다.
현장 Q&A: 후배와의 실제 대화
후배: "선배님, CT 사양에 10VA라고 적혀 있는데 이게 무슨 뜻인가요?"
나: "우리가 2차측에 연결할 계전기랑 케이블의 저항을 다 합쳤을 때 10VA를 넘지 말라는 뜻이야. 만약 케이블을 너무 길게 끌어서 15VA가 되면, 이 CT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할 거야. 계전기는 잘못된 전류값을 받아서 오동작하거나, 반대로 사고인데도 동작을 안 할 수 있어. 그래서 설계할 때 케이블 굵기와 거리를 반드시 계산해야 하는 거지."
Burden 초과 시 나타나는 문제
| Burden 상태 | CT 동작 | 결과 |
| 정격 이하 | 정상 | 정확한 전류값 전달 |
| 정격 초과 | 오차 증가 | 계전기 오동작 또는 부동작 |
| 심각한 초과 | CT 포화 | 사고 감지 실패, 계전기 무동작 |
7. Accuracy와 Burden의 관계: 두 개념이 함께 봐야 하는 이유
Accuracy와 Burden은 따로 보면 안 됩니다. Accuracy 등급은 정격 Burden 조건에서만 보장됩니다.
CT 사양 예시:
변류비: 2000/5A Accuracy: 5P20 Burden: 15VA
해석: 2차측에 연결된 총 부하가 15VA 이하일 때, 정격 전류의 20배까지 5% 오차 이내로 전달을 보장한다.
Burden이 15VA를 넘는 순간, 5P20 등급의 보장은 사라집니다. 사양서에서 이 두 항목을 항상 세트로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8. CT, VT, CVT 최종 비교
| 항목 | CT | VT (PT) | CVT |
| 측정 대상 | 전류 | 전압 | 전압 |
| 1차 입력 | 대전류 | 고전압 | 초고전압 |
| 2차 출력 | 1A 또는 5A | 110V 또는 115V | 110V 또는 115V |
| 주요 적용 전압 | 전 전압 | 주로 66kV 이하 | 145kV 이상 |
| 절연 방식 | 직접 절연 | 직접 절연 | 커패시터 분압 후 절연 |
| 특수 주의사항 | 2차측 개방 절대 금지 | 2차측 단락 금지 | - |
| 관련 표준 | IEC 61869-2 | IEC 61869-3 | IEC 61869-5 |
9. 현장 안전 수칙: CT 2차측 개방, 절대 금지
이 포스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후배들에게 반드시, 반드시 각인시켜야 할 사항입니다.
CT 2차측을 절대로 개방(Open)하지 마십시오.
왜 위험한가?
CT는 1차측 전류에 의해 동작합니다. 2차측에 연결된 부하로 전류가 흘러야 자기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그런데 2차측을 개방하면 전류가 갈 곳을 잃습니다. 이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2차측에 수천 볼트의 고전압으로 변환됩니다.
💡 비유: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갑자기 잠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운동 에너지가 갈 곳을 잃고 열과 충격으로 변환되어 차가 파손됩니다. CT 2차측 개방은 전기 에너지가 갈 곳을 잃고 고전압 섬락(Flashover)으로 변환되는 것입니다.
결과:
- CT 2차측 절연 파괴
- 고전압 아크(Arc) 발생
- 작업자 감전 사고
- CT 영구 손상
현장 작업 수칙:
CT 2차측 단자를 만지거나 회로를 변경하기 전에, 반드시 **전용 단락 단자(Short-circuit Terminal)**로 2차측을 먼저 단락시켜야 합니다. 그 다음에 기존 회로를 분리하고, 새 회로를 연결한 후, 마지막으로 단락을 해제합니다.
올바른 CT 2차측 작업 순서:
- 단락 단자로 CT 2차측 단락 (Short)
- 기존 연결 케이블 분리
- 새 연결 케이블 연결
- 단락 단자 제거 (Short 해제)
절대로 이 순서를 바꾸지 마십시오.
마무리: 변전소 설계의 출발점은 감각 신경을 이해하는 것
CT와 VT, CVT. 이 세 장치 없이는 변전소 보호 계전기도, 전력량계도, 원격 감시 시스템도 아무것도 동작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이 제대로 동작해야 비로소 변전소 전체가 눈을 뜨고 귀를 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치들의 사양을 올바르게 선정하려면 Accuracy와 Burden, 이 두 가지 개념을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Accuracy는 정밀 저울의 눈금 간격입니다. Burden은 그 저울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 무게입니다. 아무리 정밀한 저울도 허용 무게를 초과하면 엉터리 값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CT 2차측 개방은 절대 금지입니다. 전류가 갈 길을 잃으면, 그 에너지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터져 나옵니다.
이 원칙 하나를 후배들이 몸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선배 엔지니어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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